눈 안, 가운데 중, 갈 지, 못 정
당나라 말, 조재례라는 탐관오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북 절도사 유인공의 수하였으나 재물을 고관대작들에게 상납하고 출세길에 오른 뒤 후량, 후당, 후진의 세 왕조를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습니다. 송주에서도 백성들에게 한껏 착취한 조재례가 영승 절도사로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 놈이 떠나게 되니 이제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을 전해듣고 화가 난 조재례는 보복을 위해 1년간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고 송주에 유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못 빼기 돈'이라 하여 1000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미납자를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했습니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위한 돈이 1년간 100만 관이 넘었다고 합니다.
암중모색(어두울 암, 가운데 중, 더듬을 모, 찾을 색)
당나라 측천무후 때 허경종이런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경망하고 건망증이 심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의 건망증을 비웃자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자네처럼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이나 사령운 같은 대가는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양두구육(양 양, 머리 두, 개 구, 고기 육)
제나라 영공 때의 일입니다. 영공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시키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이는 곧 백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 안영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유행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영공이 안영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안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전하께서는 궁 안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사옵니다.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사옵니다.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옵소서. 그러면 궁 밖의 여인들도 남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공은 안영의 말에 따라 궁중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 남장한 여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합니다.
독안룡(홀로 독, 눈 안, 용 룡)
당나라 18대 황제 희종때의 일입니다. 산동 출신 황소는 왕선지와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만의 농민군을 이끌도 장안에 입성하고 대제국을 세웠습니다. 성도로 몽진한 희종은 돌궐족 출신 장수 이극용에게 황소 토벌을 명령했습니다. 4만여에 이르는 이극용은 군사는 검은 옷을 입고 맹공을 가해 반란군은 '갈가마위의 군사가 왔다'며 두려워했습니다.
19대 황제인 소종이 즉위한 다음해 반란군은 토벌되었고 황소도 패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극용은 그 공으로 농서 군왕에 책봉되었으나 숙적 주전충과 정권을 다투다 패하고 실의에 빠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 애종을 폐하고 제위에 올라 후량을 세웠으나 이극용을 아들 이존욱에게 멸망했습니다.
<오대사 : 당기>에 이극용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이극용은 젊고 사납고 날쌨는데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독안룡'이라고 했다"
동병상련(한가지 동, 병 병, 서로 상, 불쌍히 여길 련)
오나라 공자 광은 오왕 요를 시해한 뒤 스스로 오왕 합려라 일컫고 반란에 협조한 오자서를 중용했습니다. 오자서는 초나라 태자 소부 비무기의 모함으로 가족이 처형당하자 복수를 위해 오나라로 피신한 망명객이었습니다. 그 해 비무기의 모함으로 부친을 잃은 백비가 오나라로 피신해 오자 오자서는 그를 오왕 합려에게 대부 벼슬자리로 천거하였습니다. 이 일로 오자서는 대부 피리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백비의 눈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 필시 살인할 상이오. 공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인물을 천거하였소?"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동병상련'동우상구란 말처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비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9년 후 합려가 초나라를 공격, 대승하여 오자서와 백는 가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자서는 피리의 예안대로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져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